덕후덕후

빙과

ins12 2013. 5. 7. 12:28

 <빙과>를 처음 본 건 아니메 방영 시점에 연재되었던 코믹스판의 1화. 아니메 1화의, 치탄다가 갇힌 밀실을 푸는 사건이었는데 꽤 맘에 드는 작풍이어서 아니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이야 발매가 안 됐다고 하니. 원작은 "고전부 시리즈"라고 <빙과>는 그 1권이란 모양이지만 이하는 그냥 <빙과>로 통칭한다. 왠지 시리즈란 말이 붙으면 뭔가 격이 떨어지는 것 같은 인상이 있어.

 전에 모 게시판에서 빙과를 극찬하면서 잔잔하면서도 뛰어난 양작을 뽑아내는 쿄애니라 하길래 대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럭키☆스타>로 오덕후를 긁어내는 모에코드에 통달한 쿄애니를 왜 저렇게 평가하는지, 실제 저 평가는 P.A Works에 더 어울리지 않나 했지만 <케이온!> 이후로 <일상>,<빙과>.<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싶어!>,<타마코마켓>.. 이라면 이 라인업은 저렇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로 동의는 못함. <케이온!>은 재밌게 본 작품이고 뛰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의 포인트는 모에물에 있었다고 본다. 성장물, 청춘물으로써의 요소가 부족한게 <케이온!>이 크게 비판받는 면이니까.

 <빙과>는 쿄애니의 그간 라인업에 비추면 좀 독특한 면이 있다. 대체로 4컷 개그물에 장점을 보였던 쿄애니고, 이야기 축이 확실한 작품의 아니메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약점이 있다는 평이 있었으니까. <AIR>는 간단명료해서 좋았지만 <Kanon>은 무슨 이야기였는지 잘 기억이 안날 정도로 흐릿했고. 그런데 추리물. 거기에 빙과 코믹스 1화를 볼때 <빙과>는 매우 정적인 작품으로 보이는데, 마침 쿄애니에 대해서는 <일상>이 미적지근했던 탓에 우려의 눈길이 없던게 아니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맞은게 <빙과> 였으니까. 일단 체크는 해 뒀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정리가 잘 안되서 그간 본 쿄애니 물건을 정리하면 <하루히>는 좀 보다 던졌고 <AIR>, <Kanon>, <케이온!> 정도. 여기에 +<빙과>.

 <빙과>를 보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연출이다. <케이온!>의 본편 연출이 조금 심심한 면이 있었는데 <빙과>의 연출은 <AIR>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빛 연출을 보여준다. 같은 그림이라도 채광효과를 넣느냐 마느냐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영상 느낌이 크게 다르지. 오레키의 심리 묘사도 뛰어나고. 초반부에는 "저, 신경쓰여요!" 발동 시 과감한 연출도 돋보였는데 후반부에는 보다 평범한 연출이 되었다. 어쩌면 이건 오레키가 치탄다에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표현일지도.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치탄다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가씨이고, 오레키의 다루데레적 성향도 좋다. 오레키의 신조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라면 간단히."인데, 따지면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게 아닐까. 뭐 여기에 난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철두철미하게." 아이러니하게도 오레키는 이런 식의 회피 속에서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기대한다. 태공망이신가.

 <빙과>의 2기 ED는 작품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치탄다와 이바라가 탐정. 오레키와 후쿠베가 괴도. 여성이 구애하고, 남성이 도망가는 이 작품에 걸맞지 않아? 치탄다-오레키의 관계도 치탄다가 더 적극적인 쪽이니까. 가사도 딱 어울리고. 성우들이 조금만 더 노래를 잘 했더라면.. 하하.

 다만 중편 에피소드가 3개 나온 후에 단편들로 끝을 맺었는데 이게 뭔가 아니메의 완결성이 좀 부족하다. 원작 자체가 1,2,3권 후 4권이 단편이고 시계열이 그렇긴 하던데 예전 아니메 같으면 오리지널 에피소드로 뭔가 마무리적인 에피를 끼워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아니, 굳이 끼워넣지 않아도 마지막 대사로 오레키가 뭔가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명시했으면 좀 낫지 않았을까. 마음 잡은 건 알겠는데 행동으로 나타내질 않으니 인상이 남지 않는다. 2기가 매우 당연하다 하겠는데 원작이 안나와있으니 별 수 없구만. 발간텀도 자비가 없어서 12년동안 5권이니, 이거 10년 내로 2기 나오긴 하려나.

 이 아니메를 보면서 떠올랐던 작품이 "문학 소녀 시리즈" 였다. 비교하면 문학부와 고전부의 유사한 이미지와 청춘소설적 인상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느낀 것. "문학소녀"는 꽤 인기가 있던 시리즈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믹스, 특히 아니메화는 극장판 하나로 때워서 아쉽다. 물론 그 에피소드는 문학소녀에서 딱 하나만 아니메로 만들 수 있다면 당연히 고르는 물건이지만, 8권이나 되고 단편집도 많은 만큼 TV 사이즈로 만들 방법이 무궁무진했거든.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은 옴니버스이기도 하니까. 해외에서도 추리소설의 영상화는 TV 시리즈가 우선적이고. 아까운 IP를 좀 쉽게 날린거 아닌가 하는 생각. 물론 극장판과 TV 아니메중 뭐가 돈을 더 버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학소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아니메를 보고 생각한 것이 추리소설과 라노베의 관계이다. <빙과>는 카도카와 서점의 문고본으로 발간되고 있다. 문고본과 단행본의 차이는 사이즈라 생각하면 되는데, 한국의 NT노벨같은 사이즈로 나오면 문고본, 일반 책 사이즈면 단행본이라 하겠지만 실제 문고본 사이즈는 그보다 더 작은 것도 있다. 하여튼 대체로 크기로 구별한다. 한국은 문고본 사이즈로 나오는게 주로 라노베라서 작은 책이면 라노베인갑다 하는 편견도 있지만 서점 가서 따져보면 감각적인 소설이나 자기개발서 같은 경우는 단행본보다 작아서 문고본에 가까운 사이즈인 경우도 있으니 일률적이진 않다. 하여튼, <빙과>는 라노베가 아니다. 라노베의 정의란게 매우 불명확하지만, 대체로 라노베는 표지와 일러로 지향점을 구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그럼에도 <빙과>의 이야기는 라노베의 스타일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러 놓고 라노베처럼 팔면 아 이건 라노베이구나, 할걸? 에드거 앨런 포의 어거스트 뒤팽부터 그러하지만 추리소설이란 탐정소설의 면모가 있다. 탐정소설이란 캐릭터의 매력이 소설의 핵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홈즈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건 홈즈란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캐릭터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라노베와 추리 소설은 통하는 맥락이 있다.

 이건 결국 라노베의 정의가 모호해서 벌어지는 일인데, 어쩌면 라노베는 장르 문학 중에서도 모에물적 성격이 강한 물건을 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에물적 성격이란 캐릭터가 매우 강조되고, 극 중 연령층이 청소년층이다.. 정도로 해야되려나. 그럼 결국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청춘물적 지향이 있으면 다 라노베적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아리스가와 아리스 같은 경우는 요즘 시기 데뷔한다면 라노베 작가로 데뷔할런지도 모르지.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낮게 보는게 아니라, 청춘 소설적인 풍모가 유사하거든. 특히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그래.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는 조금 애매하네. 아니메 <어나더>는 캐릭터성이 부각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원작 <어나더>는 사건 중심이란 인상이었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강조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니까.

 라노베와 장르 소설의 문체가 다르긴 하다. 교고쿠도가 라노베라는 분류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래서 라노베 붐이 일면, 그쪽에 편승해서 한국 장르 문학이 뻗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일본 라노베시장도 모에물로 폭망하는 와중에 한국에서 그런일은 있을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