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두고 미뤄뒀다가 이번에 봤다. 원래는 신극을 전체적으로 다시 보거나 적어도 Q를 보고 이어서 보려고 했는데, 이래저래해서 ://만 봤다. 생각해보면 이 감상법이 맞는 것 같다. Q와 ://간의 근 10년을 무시할 수는 없다.
Q의 전개가 지나치게 설명이 없었다면, ://는 지나치게 설명이 많다. 리츠코, 겐도, 후유츠키는 쉼없이 온갖 설정을 떠든다. OSMU의 기반이 될 법한 중요하지 않은 설정까지도 남김없이 이야기한다. 에바 설정을 남김없이 꿰지 못해서 잘 이해는 안 되었고, 이번에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구극 에바의 장면도 없기 때문에 공허한 배경들이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에바가 필요하지 않은 세계는 대체 뭔지.
인터넷에서의 난리법석으로 커플링이 이상하게 갔다는 것은 들었었지만 애초에 에바에 커플링이 크게 중요했나 싶고 에바에 히로인이라 부를만한 캐릭터가 있다면 그건 아스카지. 이번 작품으로 더 확실해진 것 같은데. 신극에서는 신지와 이어지지만 않았을 뿐.
아무것도 모른채 게임잡지에 소개된 EOE의 줄거리를 처음 읽었고, 만화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접했던 에반게리온 만화판, 그리고 고등학교때 접하게 된 에반게리온 TV판까지, 에바는 내 덕질의 출발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에바를 둘러싼 수 많은 잡음을 걷어내도, 에반게리온 TV판은 로봇물로써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렇게 재밌는 로봇물은 드물다. 그리고 고교생의 취향을 찌르는 우중충한 분위기까지.
그랬기 때문에 신극의 제작에 환호했고, 서, 파를 보고 즐거워한 것이다. 특히 파는 같지만 다른, 보다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좋았다. 물론, 대부분이 그랬듯이 Q에서 물음표만을 던졌지만, 적어도 Q를 보고 나온 당시에는 그래도 결말을 보면 뭔가 수습이 될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늦게 나올 줄은 몰랐지.
결말에서 뭔가 우당탕탕했지만 어쨌든 이걸로 끝이 났다는 건 확실했다. 어쨌든 보고 나서 이게 에바의 마지막이라 실감했고 적어도 더 이상 다음이 궁금하다, 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Q에서의 '급격한' 내용 전환이 길어진 공백기동안 무뎌져서, 더 이상 신극에 기대감이 남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 Q 개봉 후 3년 이내에 나왔다면 모두의 반응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