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봄날은 가고>를 플레이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스쿠에니 세일 목록 보는 데 있길래 Android 버전으로 플레이.
Full Motion Video 게임으로, 영상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문제편에서 각종 단서들을 획득하는 와중에 사건이 일어나고, 추리편에서 탐정의 머릿속에서 제기되는 의문에 단서를 조합해 가설을 만들고, 이걸 활용해 해결편에서 제시되는 진짜 질문에 정답을 답해야 한다.
나빴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전체적으로 게임이 유기적이지 못하다.
문제편에서는 단서를 획득해야 한다, 고 하는데 정작 단서는 문제편을 다 보면 자동으로 얻어진다. 기획이 변경된 냄새가 난다. 이렇다 보니 문제편은 그냥 영상을 즐겁게 보면 된다.
다음은 추리편의 구성이다. 탐정의 머릿속에서 제기되는 의문에 단서를 조합하는 건 좋은데, 이 단서라는 게 아무거나 조합이 되는 건 아니고 의문에 따라 조합이 되는 답이 있다. 육각 타일에 뭐가 답이라고 표시도 해 준다. 구성을 보면 모든 가설을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의문이 있고 모든 단서가 있으니 모든 가설을 만드는 게 기본. 이 과정이 좀 지루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가설은, 그럴듯한 것부터 아무말대잔치까지 정말 제각각이다. 그중에 뭐가 정답일지를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마음속으로 정리했다가, 해결편에서 잘 답해야 한다. 추리 소설에서 작가가 주요 쟁점을 정리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정도 수준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서도 단서 조합을 끝내면 추가로 각 의문에 대해 좀 더 짚어주기는 하는데 그걸 가설마다 일일이 눌러야 한다. 중요한 선택지인 것처럼 길게 눌러야 하는 것도 불편.
그리고 해결편. 여기서는 추리편에서 제시된 의문 중 일부가 실제로 주어지고, 그 의문에 대한 가설로 답해야 한다. 해결편에서 불편했던 부분은, 해결편에서는 문제편을 돌려볼 수 없었던 점이다. 가설이 이 모양이다 보니 어느 가설이 그럴듯한 지는 실제로 문제편을 돌려보면서 확인해야 하는데, 추리편에서 돌려보고 정리해서 해결편에 진입하라는 의도 같지만, 추리편에서는 어느 맥락으로 의문이 제시되는지 알 수 없으니 긴가민가하다가 해결편에서 실제로 주어지는 의문을 보고 봤어야 하는 부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갠적으로 추리 게임(이라고 해봐야 역전재판과 단간론파)은 제시되는 문제를 풀었다는 즐거움, 그리고 그 즐거움 끝에 마주치는 결말이라는 플레이 감각이었는데, 이 게임은 게임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추리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문제대로 따로, 가설 조합은 조합대로 따로, 해결은 또 해결대로 따로 논다, 게임이 이끌어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추리소설을 추리하면서 보는 독자는 아니어서, 진짜 범인찾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실제 해결편은 플레이어가 사건을 전부 풀어야 하는 건 아니고 전체적인 흐름은 잡아 주는데, 이것도 기획이 변경된 냄새가 나는 부분.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이런저런 수정이 있지 않았을까.
한편 5장의 방탈출 구성은 위의 문제편-추리편-해결편 3편 구성이 아니라, 다른 추리 게임처럼 문제-추리-해결이 그때그때 이어지는 구성이다. 그렇다 보니 부담감은 좀 덜했는데, 맥락 없는 가설 중에 골라야 하는 건 매한가지라 역시 잘 찍긴 해야 한다. 쓰다 보니 그냥 이 가설 시스템이 별로라는 이야기인 것 같네.
게임으로서는 그랬지만, 스토리는 흥미로웠고 좋았다. 각 에피소드마다 배우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시대에 맞는 의상을 입는것도 눈요깃감이 되었다. 편집자와 작가의 콤비가 가문에 얽힌 약간 오컬트적인 내용이 섞인 사건을 푼다는 구성은 미츠다 신조 같기도 했네.
접은 글은 스포일러.
6장에 와서 누가 적동백일지를 풀게 되었는데, 맥락 없이 너무 많은 걸 아는 정원사 가설을 열심히 밀었지만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누가 죠스이일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맞추면 너무 늦은 거겠지만 그래도 풀었다는 만족감은 얻었으니 아무튼 좋아.
결국은 즐겁게 플레이했고, 전체적으로는 추천할 만 했다. 다만 추리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틀리면 틀리는 대로 그냥 하시라.. 나는 추리 평점이 중요한가? 하고 로드를 해가면서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네. 어차피 재플레이성은 거의 없는 게임이니 부담 없이 쉽게 쉽게 하는 게 좋아 보인다.
콘솔에서 플레이하지 않아서 이식판의 어느 부분이 열화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마트폰에서 플레이하면서 불편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