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프리큐어, <두근두근! 프리큐어>(이하 도키프리)를 보았다. 그래도 올해는 <스마일 프리큐어>때와는 달리 시간이 많이 간 것 같이 느껴졌다. 어쩌다보니 프리큐어를 계속 보고 있는데, 일단 그림이 화려해서 보는 맛이 있고, 그러면서도 이야기에 무게감이 충실하다는 점이 매력이다.
<스위트 프리큐어>부터 프리큐어는 계속해서 전작을 오마쥬하고 있다. 이번 작은 <프레시 프리큐어>와 유사하게 이야기에 무게를 많이 둔 작품. 아무래도 전작이 역대급으로 이야기가 없는 물건이어서 그 반동인 것 같다. 나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쪽을 선호하니까 그런 면에서 도키프리는 괜찮은 인상이었다. 1~5화까지 이어지는 초반부는 이야기가 딱딱 이어지는 게 매우 마음에 들기도 했고.
그전까지 프리큐어는 이야기 구조 자체는 단순했지만,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에 반전 요소를 꽤 강화해서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스리딩은 물론이고 프리큐어가 쌓아온 클리셰를 여럿 파괴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는 즐거움을 안겨 주려고 한 것 같다. 음, 아이들이야 프리큐어를 5년 6년치를 보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이런 신선함은 커다란 친구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스포를 안 보고 그냥 봤으면 굉장히 흥미로운 물건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쿨 후반부를 보면 누구나 레지나가 신전사겠네, 라고 생각할 만큼 전향 떡밥을 줄줄이 뿌려 뒀다가 난데없이 아구리가 등장했던 게 가장 대표적인 "뻔한 전개" 타파의 노력이다. 그럼에도 떡밥에 이야기가 먹혀버리지 않았다는게 칭찬할 만 하다. 스위트 당시 큐어 뮤즈 떡밥으로 질질질질 끌다가 정작 큐어 뮤즈인 시라베 아코가 먹혀버린데 비하면 신전사를 빠르게 풀면서 생짜 신 캐릭터로 등장해 분량이 부족할 수 있었던 아구리도 충분히 그려 줘서 확실히 개선이 되었다. 전향 프리큐어는 프레시에서 엄청난 퀄리티로 이야기를 뽑아냈고, 스위트가 그거 반복하다가 평가가 안 좋았으니까 비튼다는 발상은 좋았고 매너리즘 타파라는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분량 배분도 한 캐릭터가 존재감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평타 이상은 해 준 것 같다. 뭐 마나와 레지나 비중이 높긴 했지만 애초에 얘네 이야기가 중심축이잖아? 거기에 마나는 주인공이고. 전대물에서 이야기가 대장에 중심이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부분이다. 대체로 싸움에서는 병풍이었던 요정들이 같이 싸우는 친구라는 걸 강조한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민폐왕이 아니잖아.
다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번째로는, 동적인 연출이 부족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액션이 부족했다는 이야기. 몇몇 화들을 보면 액션 씬 연출을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연출의 컨셉이 좀 바뀌었다. 보다 정적이 되었다는 느낌? 이거야 방향성의 문제라고 해 줄 수 있겠으나, 문제는 좀 화려하게 꾸며줄 법 한 뱅크 씬들도 반다이의 지령이 내렸는지 장난감 광고가 길어지면서 늘어져버렸다는 점. 그렇다고 연출이 눈부시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뱅크들이 썩 맘에 들지 않아서 아쉬웠다. 에이스의 변신 뱅크는 괜찮았던 걸로 봐서는 능력 부족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리 하나같이 심심했을까. 그래서인지 프리큐어 에피소드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전투 씬들이 애매모호해지면서 한 화 전체가 좀 심심해져버렸다. 뱅크와 일반 그림이 썩 조화롭지 못한 면도 있다.
두번째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축이 마땅찮다. 1쿨이야 워밍업이고 2쿨은 레지나와 마나 이야기로 채웠고 4쿨은 부활한 레지나 이후로 엔딩까지 달렸으니까 괜찮은데, 3쿨이 좀 애매한 것이, 전반부는 아구리와 프리큐어 맹세로 채우고 후반부는 아이의 이야이야기로 채웠는데, 여기서 목적이 좀 희미해져버렸다. 이야기의 인도자가 사라져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1쿨 2쿨은 죠 오카다가 어쨌든 뭘 아는 놈 같이 나와서 괜찮았지만, 3쿨에서는 맹세 끝나고 매지컬 패드 챙겨온 다음부터는 아구리도 인도자 역할에서 물러났음에도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제시가 안되서 이야기가 붕 떠버렸다, 그런 생각. 써먹을 떡밥이 있긴 있었는데, 삼신기라고... 매지컬 패드를 얻은 후 한동안 아예 언급도 안 된다. 나야 몰아 봤으니까 한동안이지만 이거 실시간으로 봤으면 근 한달 반은 될 것이다. 여기서 떡밥을 조금만 더 풀었으면 죠 오카다가 난데없이 왕관을 들고 나타나는 초전개를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종전은 R웹에서 굉장한 악평이 쏟아져서 좀 긴장을 하고 봤었다. 별로 그렇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48화에서 프로토 지코츄의 부활과 난동을 좀 더 그려주는게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49화에서 열심히 싸우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 화만에 뚝딱의 향기가 나서 좀 민망하다. 그래도 최종 보스인데 조금만 더 조명을 해줬다면 뜬금없진 않았을텐데 아쉽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이 이런 세세한 연출이 좀 삐걱대는 면이 있다.
그리고 백합..인데, 뭐 백합이니 BL이니 정작 작품은 별 생각 없는데 주변에서 와와거리는 경향이 강한건 분명하고 못된 눈으로 보면 뭘 보든 다 동성애적 관계로 보이니까 별로 이걸로 깔 건 아니라고 보지만 이라릿카는 좀 더 엮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둘이 잘 어울리던데.
스마일이란 비교해서 총평을 하면, 내가 스마일을 굉장히 안 좋게 보는 것은 스토리가 아예 없이 캐릭터로만 밀어붙였고, 이게 제작진이 의도한 것이라는데서 안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마일은 매끈하게 잘 빠진 작품이지만 그 방향성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반면 도키프리는 뭔가 열심히 만들려고 했으나 결과가 부족했다는,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지는 물건이어서 그 점이 좋았다. 이야기 구조에 허점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괜찮았다고 생각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프리큐어에서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던 화려함이 부족했다는 것. 화면은 결국 돈 문제니까, 토에이가 돈을 덜 쓴거 아니냐 하는 그런 의심이 든다.
결론적으로 프리큐어의 기준선은 채운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좀 아래쪽에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본 게 6개밖에 없는데 내 마음속에서는 스마일이 바닥 깔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바닥인 셈이다만 프리큐어는 호-불호 중 대체로 호 쪽에 몰려있으나 개중 스펙트럼이 있는 거니까 재미없게 봤다는 건 아니다. 성공작은 아니라는 것. 이야기는 맘에 들어서 화면 때깔만 좋았으면 잘 만들었다고 했을텐데 그놈의 화면.. 프리큐어에서 가장 기대한 뱅크신이 애매한게 아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