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영웅전설 벽의궤적 - 총평

ins12 2011. 12. 8. 18:16





0. 총평에 앞서

벽의 궤적은 여러가지로 제로의 궤적 SC에 불과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새로운 타이틀명이 붙은 건 순전히 마케팅적인 선택이라 하겠다. 때문에 벽의 궤적을 이야기함에 있어, 제로의 궤적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본작만을 이야기하기 보다, 기존 작과의 비교를 통해 서술하고자 한다. 또한, 본 리뷰는 게임의 리뷰이므로 궤적 시리즈에 제기되는 오덕성 논쟁 관련은 배제하도록 하겠다.


1. 인터액션

제로의 궤적은 여러모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의 미덕을 이야기하면, 선형적인 전개인 것은 변화가 없으나, 세계와의 상호작용이란 면에서는 하늘의 궤적과 비교하여 크게 진보하였다. 물론 그것이 획기적인 게임제작 이념의 변화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각종 플래그가 만들어낸, 도리어 장인정신의 발현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NPC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직접 반응하지 않으며, 여전히 앵무새처럼 자신의 말을 반복하지만, 그 패턴의 변화가 매우 잦아졌다. 게임상 시간이 고정된 것은 여전하지만, 그 시간의 변화는 이전 작품들보다 잦아졌으며, 시간의 변화에 따른 세계의 변화 또한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로의 궤적의 필드가 크로스벨 자치주라는 작은 필드로 한정된 것은 팔콤의 장인정신이 커버할 수 있는 필드 크기의 문제였을 것이다.
때문에 게임이 받은 비난 또한 당연하다. 영웅전설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임이었다. 하늘의 궤적도 이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제로의 궤적은 거점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이다. 1장부터 종장까지 NPC의 대사는 변할 지언정 "필드"가 동일하다는 점은 기존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벽의 궤적은 어떤가? 벽의 궤적은 제로의 궤적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잡다한 던전과 필드가 몇가지 추가되었을 뿐, 그 특성은 큰 틀에서 동일하다. 물론 팔콤은 플레이어를 종종 강제로 "더 넓은 필드"로 보냄으로써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환기시키려 애쓰지만,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NPC 각자에게 스토리를 부여하고, 그것과 플레이어를 엮어서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높여주고는 있다. 그러나 유저의 선택은 개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일 뿐이라는 점은 JRPG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벽의 궤적은 여전히 크로스벨이라는 세계에 대한 주인공의 개입을 성공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으나, 정작 그 개입을 유저가 직접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자유도의 부족이라는 JRPG 장르의 특성이 남아있다. 또한 필드는 여전히 좁다. 즉, 좋은점도, 나쁜점도 기존 작품과 동일하다 하겠다. 그러나 확실한건, 제로의 궤적의 세밀한 세계 묘사는 JRPG중에서도 톱 클래스에 도달한 수준이였다는 것이다.

요약 : 치밀한 세계 묘사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개입할 수 없다는 JRPG 본연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특히 미슈람에서의 이벤트에서는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NPC 배치와 대사가 일신하는 장인정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 스토리

제로의 궤적은 분명 스토리 전개에 문제가 있는 게임이었다. 무엇보다도 스토리를 이끄는 핵심 축이 없다. 보스라는 양반 또한 누군가의 하수인에 불과했으며, 플레이어들이 고생해서 알아낸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모든것을 후속작에 넘겨버리는 최악의 결말이었다. 같은 FC격인 하늘의 궤적 FC와 비교해도 이는 극명하다. 하늘의 궤적 FC는, 적어도, 에스텔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마무리된 자기완결성 있는 결말이었다. 작중 게스트 격으로 등장한 전작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짓은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결과였다. 전개는 또 어떠한가? 전반은 너무 늘어지고, 후반은 너무 급박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하늘의 궤적 SC가 보여준 급조한 짝맞추기는 없었다는 것일까?
즉, 제로의 궤적은 독립적인 게임이 아니라 문제편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편이 될 벽의 궤적은 어떠한가? 제로의 궤적이 떠넘긴 스토리는 물론, 작품 내에서 제기된 스토리는 확실히 마무리를 지었다. 떠넘어온 이야기들 때문에 자기완결성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크로스벨이 처한 사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는 확실히 보여줬다 - 뭔가 엔딩영상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은 느낌은 들지만. 다만 완급 조절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 이번엔 종장이 너무 급하다. 조금 시간을 더 들여서 개연성을 강화하던가, 아니면 팀원을 쪼개놓는 전개를 뺐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4장까지 전개가 뛰어났기 때문에 더더욱 종장의 파행적인 전개가 아쉽다.
더불어 이것은 궤적 시리즈 전체에 적용되는 비판인데, 개연성을 무시하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등장하는 키 퍼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명만 그러면 이놈이 이상한 놈이구나 하고 웃고 넘어가겠지만, 한가닥 한다는 등장 인물들이 모두 그래버리면 문제가 심각하다.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외,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하렘물식 전개가 상당히 많다. 이런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결벽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못 할 작품일 것이다. 이것이 "타락"의 증거라면, 글쎄, 그런 거겠지.

요약 : 해답편으로써 적절한 스토리.

3. 전투

궤적 시리즈의 전투는 매우 전형적인 JRPG이다. 말하는 대로, O버튼만 누르게 되는 전투라 이거다. 턴제 전투 치고 자코전이 O버튼 연타가 되지 않는 게임이 뭐가 있을지 좀 궁금하긴 하지만, 벽의 궤적도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다행히 O버튼만 누르면 문제없이 이길 수 있는건 아니긴 하다.
초중반 보스전의 전략성은 매우 뛰어나다. 더욱이 보스가 디버프 면역이 아닌 탓에 다양한 보조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후반에는 보스가 전 상태이상 면역이 되지만 아군 버프기가 다양해져 커버가 된다. 그래도 보스가 디버프 및 상태이상 면역이 아닌 쪽이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더구나 보스 뿐만 아니라 일반 자코도 전 상태이상 면역이라는 점은..
제로의 궤적에서도 칭찬했던 바이지만, 하늘의 궤적의 어스월 전설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략성이 부여된 보스전은 매우 칭찬하고 싶다. 더욱이 이번 작에서는 진형 개념을 요구하는 보스전도 존재하며, 보스의 패턴에 아군이 전투중에도 맞춰나가야 하는 경우도 잦다. 하늘의 궤적의 주요 전투가 "한번 맞아보고, 걸어오는 상태이상 막는 악세사리만 차면 OK" 였던데 비하면 훌륭한 진화다.
마스터 쿼츠의 도입은 매우 성공적이다. 선택의 옵션이 다양하며 전투에 미치는 영향도 높다. 성장하는 쿼츠라는 설정도 괜찮다. 오브먼트 시스템 등장 이래 가장 큰 변화였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평하고 싶다.
다만 다양한 캐릭터들, 다양한 조합법이 등장하는데 반해 4명의 전투 엔트리는 좀 적은 감이 있다. 더 전투 필드를 늘려도 좋지 않았을까. 보조 2명의 활용에 플레이어가 전혀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요약 : 이 전투시스템으로 끌어낼 수 있는 재미를 최대한 발현한 모습.

%단순 쿼츠 그 이상인 마스터쿼츠


%전투야 여전하다.

4. 게임플레이

전작에서도 지적했던 바이지만 여전히 이 게임은 실제 플레이 반, 대사 넘기기 반인 게임이다. 단순 돌아다니면서 대화를 하는걸 넘어서, 강제 이벤트가 너무 많고 길다. 하지만 연출이 중심인 JRPG에서 이를 비난하는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전작처럼 아군 일행이 전부 한마디씩 해서 이벤트가 늘어진다는 느낌은 적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전통의 미니게임인 낚시와 요리는 여전하고, 새로 추가된 <폼이랑!>도 기분전환 미니게임으로는 훌륭하다. 경찰수첩과 전투수첩도 여전하고. 기존 작들에서 이미 완성되어 넘어온 시스템이기 때문에 커멘트할 여지는 그다지 없다.
노가다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 밸런스도 여전. 필드에 보이는 적만 다 잡으면서 넘어가면 전혀 문제 없다.
크로스벨 지도에 도력차가 추가되어서 완연한 포인트 클릭 게임의 모습이 되었지만, 따지면 의외로 필드 돌아다닐 일은 많다. 상자도 까야하고.. 또 자코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유용할 것이다.
아츠와 S크래프트가 스킵이 가능해진 것은 매우 환영할 변화. 게임 스피드가 수 배는 빨라진 느낌이다. 이 당연한 기능이 들어가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소결 : 전통의 명가다운 흠 잡기 어려운 게임플레이. 스킵 추가 만세!

%도력차 덕에 이동이 매우 편리해졌다.
5. 기타

1) 그래픽 : 누구나 까는 그래픽이고 그렇게 옹호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고해상도로 도트만 덜 튀면 글쓴이는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해상도인 것은 플랫폼 자체의 한계이므로 별 수 없는 면은 있다. 또 각 게임에는 그 게임 나름에 어울리는 그래픽이 존재한다고 믿는 바이므로.
연출씬에서 캐릭터에게 더 다양한 움직임을 부여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수가 적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그래픽이 좋아질 수 없다면 그래픽을 활용하는데 신경을 써야 하겠지.


%빈말로라고도 좋다고는 못하지만, 사실 PSP로 보면 스샷보다 좀 낫다.

2) 음악 : 제로의 궤적의 영향을 짙게 받은 음악들로, 일부로 분위기를 맞춰 썼다는 곡들이 많다. Get over the barrier! 와 Seize the truth!를 들으면 누구나 유사하게 느낄 것이다. 필드가 동일하니만큼 전작의 BGM을 그대로 쓴 부분도 많다. 원래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으니만큼 불만은 없으며, 전반적으로 괜찮은 곡이 더 늘었다는 생각이다. 다만, 슬슬 바이올린은 비중을 낮추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3) 팔콤 30주년 기념작 : 아무도 신경 안쓰지만 사실 이 게임은 팔콤 30주년 기념작이라고 홍보되었다. 때문인지 그간 팔콤 게임에서 매우 드물었던 전작 요소의 까메오적 출현이 몇 군데 생겼다. 상세한 영상은 http://www.nicovideo.jp/watch/sm15918644 (니코니코동화 아이디 필요)을 참조하고, 몇 가지 나열하면
 - 하얀마녀 화이트스톤 이벤트
 - 하얀마녀 크리스의 오르골
 - 이스1 다암의탑 배경음악
 - 아츠 및 크래프트 명칭 (주로 영웅전설4 for win)
등이 추가되었다.
하늘의 궤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연하다시피 등장하므로, 딱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에리의 오르골. 小さな英雄이 나온다.

6. 총평

여러가지로 시리즈 최신작답게, 시리즈 최고작이라 칭할만 한 작품이다. 시리즈 본연의 색을 잃지 않고 잘 연마해냈다. 혁신적인 변화는 없었으나, 누구도 이 시리즈에 혁신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훌륭하다.
JRPG의 한계를 돌파하기보다,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이다. 이정도 작품이라면 오늘날 JRPG 전체를 통틀어서도 톱클래스에 속하지 않을까.
그러나 언제까지 이 시리즈가 이 엔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 있다. 이걸로 5작째, 연도로 따지면 7년차에 플랫폼도 변화하는 상황. 이 시리즈의 신작은 어떤 개선으로 돌아올지 걱정반 기대반이다.


- JRPG를 혐오하는 사람
- 하렘물식 전개를 혐오하는 사람
- 가가브 외 영웅전설은 인정할 수 없는 사람
- 일어 못하는 사람

PSP가 있는 게이머라면 꼭 플레이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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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용도로 쓸라고 조금 고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