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영웅전설 IV 주홍물방울

ins12 2014. 2. 11. 15:31

 영웅전설4도 게임잡지 부록으로 받은 물건이었다. 게임 잡지를 거의 처음 샀을 때 광고도 실려 있었는데, 거기서는 표기가 어빈은 아빈이고 아이멜은 어이멜이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정작 게임을 하니까 어빈과 아이멜이어서 ???를 연발했던 추억. 영웅전설 1, 2, 3을 진즉 부록으로 했던 터라, 부록만 보고 어머이건꼭사야해 하고 마음을 먹고 샀다. 그 과정에 뭔가 있었을 거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 하여튼 이걸 사고 공략 핸드북도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던 기억이다. 아마도 그 때가 내가 팔콤빠가 된, 혹은 팔콤빠로 처음 행동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하기도 한 물건이었는데, 게임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 아니, 영웅전설 3의 막장 전투보다 이게 더 지루했다고? 내가 영웅전설4의 전투를 지루하게 생각한 이유는 바로 에딧된 세이브 파일을 구해다 했기 때문이었다. 그 세이브파일은 어빈이 텔레포트를 든 50/50 흑마법사에 데미지는 당연히 물리 마법을 불문하고 초강력이고 이동거리는 무한대여서 그냥 짱짱맨.. 당연히 전투가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영웅전설4의 특징인 알선소 시스템은 동선이 썩 좋지 않게 짜여져 있어서, 의미도 없는 전투를 회피도 못하고 왔던 길을 또 가야 했던 시스템은 어린 마음에 굉장히 귀찮았던 것이다. 당연히 대충 스토리만 보고 치웠었다. 영웅전설4의 재미는 전투와 육성에 있는 것인데 그걸 안했으니 재미가 있었을 리 있나.

 잠시 변명을 해보자. 나는 영웅전설 4에 대해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물건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은 요령을 알았고 노가다도 열심히 해서 뭐 그렇게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는 알선소는 옵션이요, 스토리를 빨리빨리 해야지 하는 마음에 (지금 생각할 때) 적정 레벨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필드를 나섰고, 필딘을 넘어서질 못했다. 왜냐하면 필딘에서 보른 가는 길에 등장하는 척후조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으로, 왠만한건 다 피하고 데미지는 짱짱센데 독까지 걸어서 도무지 쓰러지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넘어가도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몬스터에게 그야말로 멘붕. 

 그런 영웅전설4를 깰수 있겠다! 고 생각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 전산실에서 짬내서 하느라고 엔딩은 커녕 바로아 배도 못타고 끝내야 했지만, 알선소 퀘스트를 깨가고 돈을 모으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무렙만 있어서 쓰레기인 줄 알았던 더글라스가 알고보니 짱짱센 동료였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게임이라서 한 동안 할 생각도 안했는데,, 군대에서 했다. 여기서는 꽤 진행해서 신보 모으러 다니는 부분까지는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전역으로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것이지만. 정령팟으로 자동전투로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에  땅정어빈과 뮤즈, 엘레노아로 특색팟을 만들어 다녔다. 이때쯤 되면 고갤에서 각종 공략 정보를 꿰뚫고 다녀서.

 그리고 결국 내 손으로 키워서 끝을 본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오래된 숙제를 끝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스토리야 진즉 다 알고 알선소도 공략집을 열심히 보고 다녔던 덕에 내 눈으로 확인했다, 혹은 내 손으로 했다는 자기만족감 뿐인 끝이지만 그게 좋은 것이다. 내가 해냈다!

 플레이 이력은 이 정도로 하고 영웅전설4 관련 가장 인상 깊은 글은 스토리가 구멍이라고 통렬하게 까던 10년 전 모 블로그에서 봤던 글. 지금 와서는 출처도 기억도 안나고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매드람과 아이멜 부분에 구멍이 있었다는 걸로 기억. 어빈이 왜 그렇게 쫓기는지, 왜 신보가 어빈과 아이멜에게 주어져야 했는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있었던 거 같다. 팔콤 게임은 스토리가 좋다! 는 게 관념이었는데 그렇게 까는 글을 보고 뭔가 어른이 되었다면 지나친 말이고, 돌이켜 보면 그때쯤이 내 사춘기가 아니었나 한다. 사춘기때 이글루스나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사람이 덕후가 되지 않을수가,,

 팔콤도 스토리의 구멍을 알아서였는지 리메이크판은 스토리를 대폭 뜯어 고치고, '신'자를 붙이지 않음으로써 아예 족보를 고쳐 써 버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웅전설4 win이 한글화 정발이 늦어지고, 복제가 안 풀려서 여전히 도스판을 많이 플레이하고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어짜피 지금은 아루온이 망해서 한글판을 할 수 없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는 영웅전설4 win부터 콘도 사장&타케이리 각본가가 전면에서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가가브와는 약간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짜맞추기를 위해 무리한 부분도 있고 뭣보다 한국에서 가장 호평이던 전투시스템 및 알선소를 갈아엎어서 이래저래 한국에서는 평가가 썩 좋지 않다. 하지만 이쪽이 정사.

 영웅전설4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만 한 전투 시스템은 따지면 엄청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동료도 많고 아이템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짜맞춰볼 의욕이 난다. 동료들 각각 캐릭터성이 괜찮은 것도 장점이고. 물론 몰개성 내지는 존재감 없는 캐릭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쩄든 전투에서는 각각 특징이 확실해서 괜찮다. 요즘도 고갤에서 영웅전설4를 많이 하는 건 이런 다양성 덕분이다. 궤적 시리즈의 첫 작인 하늘의 궤적, 그리고 SC가 높은 호평을 받았던 것은  영웅전설 4의 그런 자유로운 세팅을 가져왔던 것도 한 가지 요인이었다. 문제는 밸런스상 아츠 캐릭이 좀 더 좋고 캐릭터별로 특색이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일례로 3rd를 보면 올리비에 렌 클로제가 각자의 특징과는 무관히 거의 렌-클로제-올리비에가 티어로 딱딱 나뉜다는 게 문제.

 영웅전설4 하면 역시 고갤의 아이돌 알쳄을 빼 놓을 수 없다. 시스템을 분석하기 전에는 알쳄이 왜 구린지 잘 이해를 못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 게임에는 마력과 무관히 풀피를 채워주는 수단이 마법도, 아이템도 있다는 것. 알쳄의 특징은 마력이 매우 높은 백마법사라는 건데, 마법이 마력에 영향을 안 받고, 아이템도 당연히 마력과 무관하므로, 마력이 높은게 도움이 안 된다. 게다가 백마법의 사정거리가 좁아서 알쳄도 전면에 나서야 하는데 느리다. 여기에 더해서 전투 능력이 안 그래도 부족한데 철퇴의 특성상 거기서 기능력이 더 깎인다. 마법 관련 스탯을 올려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에, 키운다면 스탯 보너스를 전사 관련 스탯으로 몰아야되는데 그렇다고 쓸만한 벽이 되주냐 하면 영 아니올시다. 그렇게 쓸 거면 어르신이지만 가웨인이 낫고,, 결국 알쳄은 무장점의 캐릭터라는 이야기. 게임피아 공략에서 힐도 쓰는데 공짜니까 꼭써라는 언급을 안했다면 수 많은 유저들이 알쳄에 의해 눈물 흘리는 일이 없었을까? 이 공략은 루키어스가 최강이라고 쓰지를 않나, 정령 마법은 구리다! 라거나, 최강 어빈은 백법전사어빈이라거나, 롱소드 배달퀘는 롱소드 값보다 보상이 낮으니까 하지마라! 라던가, 에류시온이 명검보다 공격력 구리니까 구려요! 라거나 그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조금 부연하면 루키어스는 전사 능력만으로는 더글라스보다 낫다고 하기 힘든데 마법 스탯이 정령사중에서는 부족한 축이라 썩 메리트있는 정령사가 아니고, 가장 센 동료는 마력 짱짱 준 콘로드의 오베론이 아닐까. 정령마법은 짱짱센거 알려진 사실이고, 백법전사어빈이 약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흑마어빈이 더 경쾌하게 할 수 있는 것 같고, 롱소드 배달퀘는 롱소드를 사서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쓰던 롱소드를 상점에 파는 대신 가져다 주면 되는 일. 에류시온은 마력과 기능력이 붙어 있어서 공격력은 좀 모자랄지 몰라도 전사에게도 마법사에게도 충분히 좋은 검이다.

 이 게임이 난이도가 높다는 평을 들은 건 1. 처음으로 만나는 필딘의 동료인 마티와 뮤즈의 고용비가 굉장히 세다, 2 알선소가 선택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알선소를 클리어하지 않고서는 적정렙을 맞추기 어렵다, 3. 필딘 알선소를 마쳤다고 뉴보른 알선소 적정렙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는 삼박자의 초반 장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딘 지하수도를 여관을 이용해서 조금만 노가다 뛰면 꽤 할만해지니까 초반 노가다는 필수로. 그리고 마일 레벨을 좀 몰아주자. 마일 레벨 = 루티스 레벨인데 루티스의 마법 능력이 떨어져서 최소 엘렉트로 큐브는 들고 와야 앞가림을 할 수 있다. 욕심내서 에어리얼 라브리스까지 들고 오면 중반 시작시점에서는 주력급이 될지도? 역시 법사는 렙빨이죠! 사실 버려도 어빈이 짱짱세서 다른 3명이 다 해주니까 별 상관없다는건 비밀. 

 스토리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가가브 중에는 가장 이질적이라 할 만한 물건이고, 전체적으로 왠지 하드보일드한 냄새가 풍기는 게임인데, 그런 면이 아직까지도 어필하는 것 같다. 결국 나도 PC98판이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영웅전설4의 OST라고 할 만한 음반은 3개가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ost라는 물건은 영웅전설4 win의 ost. pc98판 영웅전설4의 ost는 <Music from 영웅전설4>. 그리고 <영웅전설4 midi special>이라고 음반이 하나 더 있는데, 미디 음원을 바꾼 것 같다. 예전에 내가 나우누리에서 구했던 물건은 미디 스페셜이었지만, 여기서는 ost인 music from에서 뽑아서 몇 곡 수록.

01 朱紅い雫 〜memoria〜

 기념할만한 타이틀 곡. 제목에서 알 수 있듯 4편의 메인 테마.

07 希望へと続く道

 산길에서 나오는 곡으로 게임이 시작하면 가장 처음 들을 수 있는 필드곡. 엘 카르고와의 사투가 기다리던,, 껄껄. 엘 카르고 잡을 때가 좋았지.

09 足どり軽く

 개인적인 영웅전설4의 상징. 밝고 희망차고 신나는 곡이다만은 필드가 워낙 긴 게임 덕에 즐겁기보다는 괴롭게 느껴지는 곡이다. 하여튼 영웅전설4에서 딱 한곡 꼽으라면 이거다 이거. 중반 이후였나 후반이었나부터는 무거운 곡으로 바뀌어서 게임 분위기를 잘 반영한,, 그런 세심함이 영웅전설4를 좋은 게임으로 만드는 거지만 정작 핵심인 스토리에 구멍이 너무 많아서.

10 負けるものか!

 전투 테마. 나에게는 척후조와 해변 카게스와의 사투를 상징하는 곡으로.. 어휴. 척후조가 쓰러지지 않아!

16 迷宮乱舞

 동굴에서 전투할때 나오는 곡인데, 꽤 으스스해서 ㅎㄷㄷ. 이 곡은 왠지 잔-센이 떠오른단 말이야.

18 ベネキア修道院

 고백하자면 정작 어디서 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베네키아 수도원에 서장때 갔을 때는 아마 이 곡이 아니었을 텐데. 아이멜 만날 때 나왔나? 그것과는 별개로 음악이 좋다는 인식은 있어서 넣었다.

19 森を行け

 숲길. 가장 처음 듣는게 바로 프레야우드인데, 이것도 꽤나 으스스한 곡이었단 말이지. 필드 테마는 밝고 신나는데 숲이나 동굴만 들어가면 곡도 무섭고 적도 세고 해서 어릴때는 거의 숲이나 동굴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 그래서 동굴 들어가는 알선소를 안했더니 게임이 노답.. 하하.

20 高原賛歌

 가든힐 마을의 테마. 이거 들으려고 가든힐에서 한참동안 서있고 그랬었다. 가든힐은 워낙 험지라서 가기가 귀찮아서,,

21 製鉄の町〜ギア〜

 기아의 테마. 명곡이다. 어릴 때는 이 곡을 가장 좋아했었다. 기아는 여러모로 다른 마을과는 분위기도 전혀 다르고 해서 좋았다. 광업도시의 분위기를 잘 살린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25 潮風のリズム

 바로아의 테마. 세타도 이거던가? 여튼 항구 마을 테마다. 한마디로 신난다. 하지만 바로아의 퀘스트는 너무 동선이 멀었다,,

26 海原を風に乗り

 바로아-세타간 배를 탈 때 나오는 테마.

30 ロネの想い

 발크드 대성당에서 나오는 곡. 스테인드 글라스가 장식된 성당이라는 분위기가 어릴적에는 너무 이색적이어서 영웅전설 4를 뭔가 어렵고 색다른 게임으로 느끼게 했던 것 같다. 물론 정신전은 허당이다.

39 死闘

 중반 이후 전투 테마. 멜로디가 애절해서 기억에 남았고 종종 들었던 음악이다.

47 オクトゥムの願い

 오크둠 전 테마. 이스vs궤적에서 어레인지가 되서 새삼 다시 들은 곡이다. 나는 밴티지 마스터의 瞬きを見上げて와 유사하다고 느꼈는데.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여튼 극적인 맛은 이게 발두스전 테마보다 나은 것 같다. win판에서는 발두스가 짤리면서 최종보스 테마로 격상!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