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덕후

크로스 앙쥬

ins12 2015. 9. 1. 22:03

 선라이즈의 2014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크로스 앙쥬>를 감상. 방영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작년 9월쯤 성우진 보고 ?!?!?!?를 띄우며 기대작에 올려둔 아니메였다. 뭔가 미즈키 나나, 키타에리, 타무라 유카리라니 5~6년 전쯤 초호화 성우진! 이라고 붙여놨을 듯한 라인업이잖아? 원래 성우진에 돈을 부은 아니메는 짤없는 덕후취향 B급 이상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후쿠다가 손을 댔다는 소식에 재미는 확실하겠군, 이란 생각을 했다. 역시 재밌었다. 물론 B급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영광의 정점에 서 있던 주인공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아둥바둥 재기하는 건 종종 보는 전개라, 초반에는 이러다가 노마끼리 으쌰으쌰해서 마나랑 싸우겠구먼.. 뻔하다 뻔해! 하고 있었는데 12화에서 이야기를 뒤집은게 좋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좋아서 전개가 너무 느긋하다, 혹은 너무 급하다는 느낌 없이 25화동안 선형적인 전개라는 것도 좋다. 그리고 경쾌하고. 생각보다 구성이 정말 탄탄한 물건이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B급인 이유는 역시 수위다. 그렇게까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려버리니까. 화제를 모았으니 성공적이라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역치가 순식간에 에스컬레이트하는 통에 별로 자극도 못 받았고 좀 지겹더라. 반 헐벗고 나오는 걸로 충분합니다. 아, 그리고 변태신의 변태행각이 긴건 전개에 별로 좋지 못한 군더더기였음.

 그리고 역시 충격과 공포의 22화. 지금까지 잘 쌓아왔던 그래도 정극스러웠던 분위기를 한순간에 뒤집어버린 솜씨에 나는 충공깽의 마이히메 26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거야 이거 이거야말로 선라이즈라구!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마이 시리즈의 직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마이 히메를 정말 재미있게 봤으므로 크로스 앙쥬도 재미있게 보는건 어찌보면 당연했을지도.

 그간 미즈키 나나의 ETERNAL BLAZE 풍 노래는 잘 안 들었었는데 2기 ED인 종말의 러브송은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2기 OP인 진실의 묵시록은 영 아니었어.

 미즈키 나나가 연기 못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극중에서 상황을 가리지 않고 계속 센 톤으로 일관하는데 혼자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홋쨩을 로봇물, 그것도 파일럿으로 본 건 꽤 드문 일인 것 같은데 홋쨩은 나이가 들어도 예전의 깨끗한 톤을 유지하고 있어서 대단하다. 하긴, 타무라씨의 힐다 연기를 듣다보니 언제적 란파가 자꾸 떠오르더라. 성우는 신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