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덕후

Selector infected/spread WIXOSS

ins12 2015. 10. 1. 00:28

 <마마마>의 성공 이후로 극적인 설정에 근간을 둔 소위 '멘붕물' 붐이 이어지는데, <셀렉터 인펙티드/스프레드 위크로스>(이하 셀렉터)는  TCG 게임을 홍보하기 위한 애니메이션임에도 이런 설정을 도입한 것이 독특하다. 하긴, <유희왕>도 결코 평범한 설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작이 그모양(..)이었다는 변명의 여지가 이는 <유희왕>과는 달리, 제로 베이스에서 오리지널 홍보 애니를 기획하면서 딥다크한 애니메이션을 뽑아내는 건 사도로 보인다. 어짜피 모에계 TCG는 덕후들에게만 팔리면 된다는 선택이었을까.

1기인 인펙티드에서는 시종일관 호러틱한 BGM이 깔리며 세계가 무너지니 어쩌니 하는 종말론적인 분위기에, 유즈키의 올곧은 소원과 이를 둘러싼 압박이 이어지고, 주인공인 루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나서는 걸 회피하다가, 마지막에는 모두를 구원하는 소원을 빈다는 점에서 <마마마>의 전개를 노골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하지만 인펙티드 8화의 임팩트는 정말 대단했다. 호러틱한 분위기에 짓눌려서 가슴졸이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성우가 바뀌어 있어서, 이 씬에서는 글자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반면 해답편이 되어야 할 스프레드에서는 전개가 좀 엇나가 있다는 인상이다. 전편에서 던져진 1. 루의 소원이 이뤄지지 못한 것, 2. 타마가 사라진 것, 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루가 뛰어다니면서 했다기보다는 때 되니 이오나가 줄줄 읊어줘서 해결해버렸다는 느낌? 더군다나 스프레드 초반부만 해도 날카롭게 나오던 이오나가 갑자기 완전히 데레데레해져서 그것도 좀.

 딱히 주제 의식이 보이지 않고 이야기에 맞게 설정이 형편 좋게 배치되고 캐릭터들이 움직여준다. 자극적인 설정으로 자극적인 극을 그려 화제를 모은 화제작이기를 바랬다고 할 것이다. 이야기를 그리는 것도 의의는 있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려는 게 없으면 공허하다. 모든 떡밥이 반드시 회수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배경들에 대한 설명이 부실한 것도 아쉽다. 마유의 망상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건 좀 핵심고리가 아닌가.

 카드 게임의 홍보물이라는 걸 생각해도 좀 미묘한 부분이 있는데, 카드 게임은 카드에 스펙이 정해져 있어서 그대로 계산되는데 아니메의 묘사로는 마치 루리그들의 기합으로 전투를 벌이는 느낌이어서 영 아니었다. 거기에 아니메를 봐도 카드게임의 룰을 전혀 모르겠어. 위크로스란 게임의 인지도는 올렸으니 그걸로 성공인 걸까?

 이 작품을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오카다 마리의 물건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 작품을 보고 든 생각은 오카다 마리는 본연의 색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감독의 색, 스탭의 색을 그대로 써내려가면서 자신의 색을 각론적으로 드러내는 각본가라는 것. 뭐 그게 각본가 본연의 역할이라고 할 것이지만. 그러니까 <셀렉터>가 이런 물건이 된 건 프로덕션의 기본 컨셉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가 아닐까. 유즈키의 근친 설정은 본연의 색 같지만.

 감상글을 쓸 때마다 성우 이야기 한둘을 하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와중에 몇 자 붙이면 이 작품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성우는 아오이 아키라 역의 아카사키 치나츠 씨. 오레슈라의 러브러브왕왕왕왕냥, 으로 이미지가 생긴 성우여서 이런 저런 역을 많이 들어봤음에도 그쪽 이미지만 남아 있었는데 아키라는 성우에게도 굉장히 도전적인 역이었을 것 같다. 감정이 널을 뛰는데다 그 감정을 잘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니까. 연기를 평가할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 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상깊은 연기였다는 점은 적어둔다. 우리스 역의 쿠기밍은 언제나의 쿠기밍이잖아,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한번씩 보여서 특이했다.

 OP를 맡은 와케시마 카논 씨는 잡아 끄는 발성이 독특해서 좋은 것 같다. 나무위키에 팬이 쓴 것이 분명한 주절주절들은 글쎄.. 약간 사유화된 문서가 아닌가 한다. 단마치의 ED에서 처음 듣고 괜찮다 싶어서 앨범을 구해다 들어봤었는데 그 앨범에 실린 곡들 - 셀렉터에 쓰인 곡들을 포함한 - 은 단마치 ED와는 좀 색이 다르긴 하다. 하여간, 좀 더 들어볼 만한 가수로 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