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도쿄 제나두

ins12 2015. 12. 28. 02:13

일본 팔콤의 2015년작, <도쿄 제나두>를 클리어했다. 47시간.

 팔콤빠를 자처하는 나지만 이 작품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갑자기 예전 작품 끌어와서 시체팔이하는 것도 그렇고 배경이 현대인 것도 그렇고. 안 그래도 흔해빠진 라노베 스토리 쓰는 애들이 배경이 현대면 더할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나유타의 궤적>마냥 발매일에 바로 안 하고 실은 한글판 나올때까지 살 생각도 없었고 기종조차 PS4 멀티인 줄 알고 제나두는 PS4로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우연찮게 현지에서 싸게 공수할 기회가 있어서 생각 외로 사서 플레이.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했는데 팔콤 게임답게 평균은 해 준 것 같다. 하지만 나로써는 내가 우려하던 팔콤겜의 약점들이 다시금 표면화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들게 된다. 기껏 '제나두' 이름 붙인 것 치고는 어떠한 오마쥬도 없어서 황당하기까지 한데, 섬궤 네타를 작품 내적으로 너무 써먹어서 이게 궤적의 스핀오프인지 별도 작품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미니게임에 광고판에 전부 <섬의 궤적>으로 도배되어 있다. 궤적이 제일 잘 팔리는 시리즈라는 건 이해하지만 이럴 것 까진 없었다. 라인업으로 굳이 따지면 <나유타의 궤적> 뒤에 들어갈 부분이긴 하지만.

 액션 게임으로써는 팔콤답게 훌륭하다. 가만 보면 얘네들은 RPG보다는 액션을 더 잘만들고 이쪽이 본령인데 RPG만 잡고 있으니 아쉽다. 이번에도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주고 기믹도 기본 흐름은 유사하지만 여러 바리에이션을 시도해서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점프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스7 이후 고질화된 보스전 재미 부족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언제부턴가 팔콤 액션 게임이 쉬워지고 적 공격은 카메라가 낮아지면서 잘 안보이게 되어서 노멀에서는 그냥 적당히 맞아주면서 때려도 이길 수 있게 되었는데 때문에 예전 이스마냥 몇 번 죽어가면서 패턴 익히는 재미가 부족해졌다. 제나두도 마찬가지지만 좋은 보스전이 하나 있긴 했는데 바로 종장 보스전. 1페이즈는 캐릭터 한명씩 날려버리는 게 동료들 중 3명만 전투에 참여한다는 시스템의 한계를 잘 이용해서 좋았다. 2페이즈는 패턴과 공격범위가 알기 쉬워서 적당히 피하기도 쉽다.

 하지만 이 게임은 액션 게임이 아니라 액션 RPG이고, 그런 면에서 빛이 바래는 부분은 RPG 부분이다. 요 RPG 부분은 <섬의 궤적>의 시스템과 똑같다. 거의, 99% 똑같다. 때문에 궤적의 메인 스토리간 NPC 마라톤 및 서브 퀘스트로 게임이 늘어지는 문제가 그대로 들어온다. 던전은 딸랑 5분짜리인데 그 던전 열려고 글을 4~5시간 읽어야 하니 이게 참;; 그래서 이번에 플레이할 때는 프렌드 수첩도 안채우고 퀘스트만 했는데도 늘어진다. 일판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리고 <섬의 궤적>의 시스템과 똑같다는 건 그 자체로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건 궤적이 아니라 별도 시리즈인데 거기 나온 미니게임 스킨 씌워서 또 있고 요리 똑같고 낚시 똑같고 이러고 있으면 되겠어? 기껏 별도 타이틀 붙인 이유가 뭐지. <모리미야의 궤적> 이라고 하면 됐잖아?! 안일하기 짝이 없다. 밋시 대놓고 퀘스트에 안 나온거 딱 하나 평가해준다.

 음악. <섬의 궤적 2>에서도 슬슬 느꼈지만 jdk의 음악적 변화가 내 범위를 점점 벗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여서 아쉽다. 하드락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스 다나의 라크리모사>까진 들어보고.. 그래도 이스는 다르겠지? 아 근데 셀세타 기미가 또 좀. Believe it!이 그나마 <섬의 궤적 2>의 Severe blow랑 유사해서 괜찮았는데 사실 Severe blow도 그나마 낫네, 였던거라. 의외로 스피카 곡이 괜찮았는데 Seize the day는 처음 들을때는 뭐 이래?! 싶었던게 매 화 오프닝으로 계속 들으니까 중독이 되었는지 그 맥아리없는 보컬조차 괜찮게 느껴진다.

 스토리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아, 그전에 칭찬할 것 하나. 매 화 오프닝 영상을 삽입했는데 이게 의외로 애니메이션 틱해서 괜찮은 효과였다. 아이캣치도 있고. 엔딩 영상도 하나 만들지 그랬어. 거기에 오프닝 영상은 이전 팔콤의 어설픈 흔들림(...)을 벗어나 드디어! 외주로!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퀄리티 높다! 팔콤이 참고용으로 제공한 자료가 뻔히 보인건 웃겼지만. 스토리..는 별로 좋은 말 못한다. <섬의 궤적>에서 어설픈 학원물 만들더니 이번에는 어설픈 전기물을 만들어서 왔다. 전형에 전형에 전형을 덧붙인 스토리가 대략 5장까지 이어지는데 하품나니까 알아서 대응책 생각하면서 플레이하시길. 그 이후라고 딱히 더 좋아지진 않는데 딱 종장 보스 앞에서 끝까지가 이 게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고 그 외는 에필로그 포함해서 개판. 아니, 에필로그가 더 개판이야. 이건 네타성이니까 밑에서 적는걸로 하고.

 학원 전기물 보다보면 웃긴게 그렇게 으리으리하고 대단하고 큰 위기인데 왜 해결하는건 학원 졸업하고 조직에서 높은 경력을 쌓은 어른들이 아니라 꼬꼬마들이냐고. 여기서 적절한 알리바이를 공작해야 하는데 제나두는 우직하게도 아무런 알리바이도 없다! 세상에. 아스카는 막 기관의 집행자라는데 엄청 쩌는것처럼 말했다가 사실 미숙합니다.. 가 됬다가 막판에는 또 엄청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데 아니 미숙한 애가 이 정도면 더 잘난 놈들을 데려와야 할 거 아니야! 이런 안일한 스토리가 먹힐 줄 아냐, 이제 내앞에서 팔콤게임 스토리 좋다는 소리 하기만 해봐라.



 종합적으로, 신작을 만들랬더니 섬의 궤적 스핀오프가 튀어나온 작품. 그런거에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글쎄. 스토리가 워낙 마음에 안들어서 팔콤에 대한 신뢰도가 또 한번 하락하고 말았다. <이스 다나의 라크리모사>도 진심 걱정된다. 이스도 이상해지면 정말 돌아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