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덕후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ins12 2016. 1. 30. 01:56

 2015년의 프리큐어, <프린세스 프리큐어>를 감상. 전작을 재미없게 본 이유 중 하나로 몰아서 보지 않은 점이 걸려서 이번 작은 몰아서 보려고 나름 시기를 맞춰서 봤고, 덕택에 마지막화를 실시간으로 마칠 수 있었다. 다음에도 이런 느낌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번 작은 시작부터 극찬이 보였지만 전작의 후광(..) 덕이 있으니까, 라고 생각해서 약간의 기대만 갖고 보았는데 정말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어서 다행이었다.

 <예스! 프리큐어 5> 이후 프리큐어가 전대화하면서 일종의 매너가 성립되었다. 동료를 모으고, 1쿨 말에 1차 파워업 및 신간부 등장, 2쿨 말에 적진으로 돌입해서 신전사 등장 등 대변혁, 3쿨 시작에 2쿨 말 사건의 뒷정리, 4쿨 시작에 마지막 파워업, 그리고 마무리, 라는 매너이다. 전대물을 안 봤기 때문에 이것이 전대물의 매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쿨 단위로 떨어지는게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신전사가 있고 없고, 전향을 하고 안하고, 간부가 죽고 안죽고 등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은 대동소이하다.

 이런 정형화된 전개 탓에 프리큐어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을 겪고 있다는 비판이 등장했다. 그리고 최근 <아이카츠!>와 <요괴 워치> 등 경쟁작의 흥성으로 떨어진 매출액이 이를 뒷받침했다.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는 나름 전대 프리큐어에 변화를 주고자 노래하는 프리큐어라는 컨셉을 도입해지만 신통치 않은 결과였다. 즉, 프리큐어의 매너리즘이란 토에이도 인식하고 있지만 개선하지 못하고 있던 시리즈의 큰 문제라는 것. 그런데 <프린세스 프리큐어>는 갓애니라니, 뭔가 대단한 개선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프린세스 프리큐어> (이하 고프리) 역시 이 매너는 충실하게 지킨다. 1쿨 말에 클로즈가 퇴장하고 트와일라잇이 전면에 나서고, 2쿨 말에 호프킹덤에서 전향 이벤트가 일어나 스칼렛의 이벤트가 이어지고, 3쿨 말에 최종기를 손에 넣었으며, 마무리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프리를 감히 갓애니라고 하는 이유는 골격으로써의 매너에 붙은 살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다.

 우선 연출. 본 시리즈의 감독인 다나카 유타 씨는 모 위키에 항목도 있을 정도로 인지도 있는 신예인데, 그 신예에게 토에이의 간판 시리즈의 감독을 맡긴 수뇌부의 기대를 훌륭하게 부응해냈다고 할만한 뛰어난 연출을 보여준다. 이 감독의 액션 연출의 특징이라면 물 흐르듯이 움직인다는 것. 캐릭터도 움직이고 카메라도 움직인다. 특히 카메라가 움직이는 건 움직이는 각도에 맞는 장면들을 그려내야 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약간 부담이 되는 연출인데도 대담하게 사용하는 덕에 신선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화면에 밀도도 높다.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는게 눈에 보이는 씬들이라 이번 작에서 전작들보다 예산이 좀 늘은 것 같은 대목.

 그리고 주제의식. 주제에 맞춰 컨셉을 잡고 적들을 만드는게 프리큐어의 기본이지만 주제가 흔들려버린게 전작이라 이번 작의 꿈에 대한 강조는 빛난다. 특히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키라라의 에피소드와 우스워 보이는 꿈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관철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하루카의 에피소드가 눈부시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성장물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라 고프리 또한 성장물의 색채를 띄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꿈을 향해 걷는 과정에서의 절망을 인정하는 것도 좋은 마무리였다.

 화면연출과 주제의식, 영상물의 외연과 내면이 모두 확고하게 서 있기에 비록 같은 매너 위에 있더라도 이전 작보다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 감히 시리즈 최고작의 찬사가 부족하지 않은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너리즘의 탈피라는 과제는 여전히 시리즈에 남아있다. 때문인지 차기작인 <마법사 프리큐어>는 대놓고 마법소녀를 가져오면서 프리큐어 시리즈가 표방해온 "마법소녀물이 아니다"는 눈가리고 아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컨셉을 들고 왔는데, 과연 이 대담한 표방에 걸맞는 차별화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까지 쓰고나니 리뷰 형식으로 글의 흐름이 완결되어버려서,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특징적인 부분을 정리.

 일단 특징적인 부분부터 좀 적어보면, 토에이가 굉장히 힘을 많이 준 작품이라는 걸 여기저기서 많이 느낄 수 있다. 위에도 썼지만 다나카 유타 씨의 연출은 돈이 꽤 많이 들 법 한데 과감히 기용했고, 퀄리티도 상당한 수준 이상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엔딩곡은 캐릭터별로 새로운 가사를 준비해서 네 버전을 만들었다. 이래서야 10(+1)주년 기념작이라는 드립이 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프린세스라는 탐미적인 소재, 귀족 사립 기숙학원인 노블 학원이 배경이라는 점 등에서 우테나, 마리미테 등 겹쳐보이는 작품이 많다. 우테나를 안본 입장에서는 마리미테가 눈에 띄는데, 동경의 대상인 미나미는 사치코님과 많이 겹치고, 발랄한 키라라는 요시노가 상당히 겹쳐보이는 캐릭터. 특히 미나미와 키라라 사이에서 하루카가 츠보미 취급받는 부분은 유미의 모습과 상당히 겹쳐보였다. 토와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조금 환기되기는 하지만.

 미나미와 키라라가 설정상으로 완벽하다시피 한 캐릭터들이라 프리큐어 풍의 스토리를 짜 낼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는데, 키라라는 발랄하고 모델이라는 설정에 시너지를 받는 에피소드로만 채워져서 굉장한 퀄리티들의 에피소드들이 나온 반면 미나미는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수수하고 애가 너무 진중해서(...) 재미가 좀 덜했던 것 같다.  원래 노랭이는 선호하지만 이번 작에서는 특히 키라라가 마음에 쏙 들었었는데 제작진들도 그랬는지 액션에서 이런저런 잡기술 비중도 많이 주고 뱅크도 멋있고 기술 쓰면서 키랏키랏 하는것도 귀여워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전향 에피소드의 퀄리티는 훌륭했지만 그래도 이스 전향만큼의 카타르시스는 주지 못했다. 뭐, 이스 전향은 2쿨동안 감정선을 모아서 폭발시킨 전개다보니 이런거 나오기는 쉽지 않다. 토와는 미유키치 특유의 연기가 나오는데, 어디서 목소리가 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데 확실히 그런 것도 같다. 이번 작은 프레프리마냥 디자인이 길쭉길쭉하고 약간 어른스러운 분위기다보니 크게 튄다는 느낌은 없는 게 다행이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로드 들고 싸우는 씬도 멋있었는데, 무기 들고 싸우는 프리큐어가 언젠가 나오려나?

 하여튼 이번 작은 정말 재밌게 봤다. 해차프리 이후 이 시리즈를 계속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를 완벽하게 날려주고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되찾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 마호프리가 후광에 눌릴 까 걱정되긴 한다. 큐어 매지컬 루비폼만 자주 나오면 커다란 친구들의 관심은 크게 받을 수 있겠지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