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아닌 문화물

열흘간의 불가사의

ins12 2016. 11. 12. 02:57

 엘러리 퀸의 "라이츠빌 시리즈"의 제 3작, <열흘간의 불가사의>. 이걸 잡을 때 쯤 되니 <폭스가의 살인>과 <재앙의 거리>가 가물가물해지는데, 작중 오랜만에 라이츠빌을 방문하는 엘러리의 모습을 보니 이정도 거리감이 좋았던 것 같다. 범인이 아무래도 생각이 안나는건 문제지만.

 라이츠빌을 소개할때마다 끌어오는 표현이지만, 국명 시리즈와는 달리 라이츠빌은 보다 소설에 가까워진 추리 소설이라는게 일반적 소개이다. 그리고 <열흘간의 불가사의>도 그 소개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퀸이 9일간 라이츠빌에 머무르면서 겪은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빠져드는 이야기이다. 퀸이 샐리와 디드로, 그리고 라이츠빌의 저택에 대해 묘사하는 파트는 퀸 답지않게 공을 들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퀸, 퀸은 이번 작에서 유별나게 사건에 깊게 휘말리고 감정을 여실없이 드러내며 계속해서 좌절한다. 퀸에게 캐릭터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

 구글에서 독자 리뷰 몇 개 봤더니 등장 인물이 몇 명 안되서 범인은 금방 알아낼 수 있다거나, 트릭이 무리수가 많다거나 하는 후던잇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점수를 깎을법한 요소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본 작을 후던잇이라 보기에는 그으으을쎄에에.. 드라마성이 가미된 스릴러에 가깝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중요한건 드라마성과 너무도 극적인 사건 자체라고 생각한다. 범인은 뭐, 평가대로 선택지가 적기도 하고. 내가 독서할때는 추리소설이라는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 없이 그냥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게 되더라고.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감각에서 '사건'이라고 칭해질 사건이 꽤 뒤에 배치되어 있기도 해서.

 그리고 고전추리를 읽을때 주의할 점이지만, 이 작품도 48년에 나온 작품이고 오늘날 범람하는 '유사한 스타일'은 오히려 이쪽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 구조야 유사한 작품들이 몇 개 있지. "교고쿠도 시리즈"의 <무당거미의 이치>와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한 쪽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른쪽의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엘러리 퀸의 최고 걸작 반열에 올려둘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훌륭했다. <재앙의 거리>를 지금까지 라이츠빌 톱으로 꼽고 있었는데 본작을 읽은 이상 비교를 위해서라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철두철미한 본격 트릭의 대가 퀸 뿐만이 아니라 라이츠빌에, 고뇌하는 탐정 퀸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