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아닌 문화물

존 딕슨 카 작품들 몇 권 감상

ins12 2016. 3. 2. 22:53

 요새는 트위터에서 몇 줄 써놓고 말다보니 블로그에 기록이 없었네. 딕슨 카의 작품들을 읽어보겠다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권 잡아왔었는데 이번에 <기묘한 사건 전담반>을 끝으로 다 읽어서 적어둔다. 읽은 책들은 <밤에 걷다>,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황제의 코담뱃갑>, <기묘한 사건 전담반>의 총 4권인데 <밤에 걷다>는 전에 써 뒀으니까 나머지 세 권.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화자가 세번이 바뀌지만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로 조명하는 건 아니라서 크게 번잡하진 않다. 사건의 페이즈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책은 유난히도 잘 안 읽혀서 사실 읽다가 진이 빠져버린 감이 있다. 등장인물도 번잡하게 많다. 사건이 희극적 터치인데 템포가 좀 안 좋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데  안락의자 탐정한테 사건을 잘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화자들의 능력이 더 대단한 것 같다. 트릭은 꽤 흥미롭긴 했지만 정윤성님이 말씀하신 대로 범인이 밝혀져도 느끼는 충격이 낮은게 아쉽다.

 <황제의 코담뱃갑>. 내가 예전부터 알던 카의 작품은 이것밖에 없었는데, 제목이 저래서 대체 뭔 작품일까 감도 안왔었다. 실제 코담뱃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것만 알아도 이 작품의 트릭은 아마도.... 음, 오랜만에 읽으면서 감을 잡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정말 세련되었다. 괜히 대표작이 아니네. 거기에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과는 다르게 분량도 간결해서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작풍이 좀 다르다는게 문제네. 카 다운 신비괴기한 밀실살인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따지만 엘러리 퀸의 라이츠빌과 비슷한 위치라고 할까. 영국인들이 나오지만 프랑스가 배경이라는 점을 특기. 그리고 요즘은 쓸 수 없는 트릭이다는 것도.

 <기묘한 사건 전담반>. 나는 작가의 작풍을 알려면 단편집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표제작인 "기묘한 사건 전담반" 연작은 말 그대로 일견 기묘해 보이는 사건을 전담해서 맡는 런던 경시청내 한직이 다루는 사건들인데, 요즘이라면 캐릭터성을 붙여서 더 매력적으로 써나가겠지만 시대가 시대다보니.. 하하. 물론 기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 트릭으로 풀리는 건들로, 가장 카 다운 작품들이다. 요즘은 자주 쓰여서 식상한 트릭도 있지만, 시대가 시대다보니! 후반부는 고딕 호러풍인 작품들로 채웠는데 카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카를 읽은 이유가 일본 신본격의 원전을 한번 보자는 의도였고 <기묘한 사건 전담반>에서 그걸 찾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정발된 다른 작품들도 기회가 되면 잡아봐야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