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스타크래프트2 : 군단의 심장

ins12 2013. 3. 22. 00:59

 내 손으로는 도저히 RTS는 할 수 없는 미천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캠페인만 깼다. 하긴 자유의 날개도 4만원 주고 사놓고 캠페인 깨고 유즈맵 몇 판 하다 말았지. 알고 보니 캠페인은 불법복제로도 뚫렸다는데 뭐 별로 아깝진 않고.. 요새 게임은 거의 디지털 구매가 활성화 되어놓으니 여기저기 쫓아다니는 것 보다 돈 주고 사는게 편하기도 하고 기분도 안 꺼림칙하고 하니까 좋은 것 같다. 다른 매체들도 디지털 구매가 좀 활성화가 되야 할 텐데 말이지.

 괜히 베짱 부리면서 난 <자유의 날개> 어려움 업적을 다 해치웠다고! 하다가 혼자 스트레스에 끙끙 앓고 보통으로 클리어. 업적은 따기 어려운 게 몇 개 있었는데 가장 고생한건 대천사에게 노 대미지였다. 이것만 대여섯번은 재시도 한 것 같다.

 여튼 케리건 사가. 전작의 캠페인은 스토리의 큰 축이 좀 유치찬란했다는 거 빼면 완벽한 캠페인이었다. 레이너는 다양한 지역을 탐험했고 그 와중에 테란의 유닛들은 단 하나, 밤까마귀만 빼놓고는 충실히 소개되었다. 다양한 대사와 새로 추가된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인터랙티브. 여태껏 RTS의 캠페인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퀄리티였고, 발상의 전환이었다. <자유의 날개>의 캠페인은 RTS계의 마스터피스로 길이 남으리라.

 그러면 <군단의 심장>은 어떠한가? 전체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자유의 날개>보다 낫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자유의 날개> 스토리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12등급 사이오닉 존재로 짱짱센 케리건을 잡으러 저그의 본성으로 뛰쳐들어간다는게 좀 급작스럽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목표가 케리건을 인간으로 되돌린다는 점에 이르르면 Queen Bitch로 악명높은 케리건이 난데없이 붙잡힌 공주가 된 것 같단 말씀이야. 한 마디로, 좀 유치하다.

 <군단의 심장>은 <자유의 날개>가 사이드 스토리에 힘을 많이 준 덕에 메인 스토리가 가려져 빛을 일은 문제를 만회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케리건은 결코 곁가지로 새지 않는다. 그녀는 군단의 일부를 되찾자 마자 군단을 회복하고, 원시 저그를 흡수하고, 나루드와 결착을 내고, 레이너를 찾아낸다. 목표는 단 하나, 레이너를 되찾고 멩스크에게 복수하는 것. 때문에 <군단의 심장>은 큰 메인 줄기만 남아있고, 이것이 마치 영화를 본 것 같다는 호평을 하게 한 것 같다.

 저그는 테란이 아니다. 케리건의 부하들이 레이너의 동료들 마냥 유쾌한 인물일 수 없고, 테란의 캠페인 마냥 스페이스 카우보이의 향기가 짙게 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새로 등장한 이즈샤와 아바투르, 자가라는 나름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보여줬다. 그런 면에서는 뛰어났다.


 문제점은 케리건의 모험에 초점을 너무 맞춘 나머지 저그의 인상이 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그의 특징인 진화와 변이, 적응은 훌륭하다. 진화 미션은 선택지의 배경,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시도였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건, 저그가 어떤 종족이었냐는 것이다. 끊임없는 번식과 확장, 그리고 물량공세. 저그는 그 어떤 종족보다도 전면전에 어울리는 종족이고, 저그의 스토리도 전면전 중심으로 짜여져야 했다고 생각한다. 흔히 과거의 RTS 캠페인을 평가함에 있어서 "적 전멸로 귀결되는 반복"을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난 저그의 스토리였다면 "적 전멸"이라는 목표야말로 저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난이도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맵의 넓이에 있다. 그리고 <자유의 날개>의 캠페인보다 더욱 다양화된 미션 목표에 있다. 저그를 서사하지만 저그를 잘 보여주진 못했다. 저그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건 매우 안타깝다.

 또 하나의 단점을 들자면 업그레이드가 조금 빈약하다는 것. <자유의 날개>의 선택은 세 개의 방향이었다. 1. 표본 연구로 인한 기술 획득, 2. 무기고 업그레이드, 3. 용병 구입. 그러나 <군단의 심장>에서는 1. 진화, 2. 변이, 3. 케리건의 능력으로 변경되었다. 진화는 훌륭하다. 케리건의 능력은 군단에 미치는 효과가 좀 부실해서 단계가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실은 케리건이 너무 세기도 하다. 문제는 변이인데, 유닛마다 세 개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건 너무 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저글링 업그레이드는 발업과 아드업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차라리 전체 갯수를 10개 정도로 한정하는 건 어땠을까.

 그리고 가장 크게 지적하고 싶은건, 캠페인과 멀티가 완전히 유리됐다는 점이다. 밀리에 있는 멀쩡한 유닛이 캠페인에서는 삭제되고, 적도 특정 유닛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다. 다크 템플러 등의 은신 유닛을 쓰지 않기 때문에 감시군주를 잘랐다. 말이 되나? 진화 컨셉에 맞춰 캠페인 고유의 유닛과 업그레이드는 강조되지만 정작 확장팩에 와서 게임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의료선에 부스터가 생겼다고? 세상에나, 왜 블리자드는 그런 매력적인 변화를 캠페인에서 설명하지 않은 거지? 프로토스는 신규 유닛이 무려 3개나 생겼는데, 캠페인에서 이 유닛들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스커미시란 원래 캠페인의 거대 세력들이 소규모 전장에서 벌이는 국지전이라는 개념에서 등장한 모드이고 때문에 워크래프트2 이후 넷플이 활성화되면서 캠페인이란 어떤 의미로 스커미시의 연습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대체로 RTS의 캠페인이란 초기 1, 2개 미션은 튜토리얼이고 이후 하나씩 유닛을 해금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혹은 튜토리얼 후 완성된 종족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개중 캠페인의 특수 유닛(eg. 워3의 펠오크)이나, 혹은 전용 종족(eg. 워3의 나가)을 투입한 경우도 있었는데, 대체로 그런 것들은 주가 되지 못하거나, 원 종족에 대한 '소개'를 충실히 한 후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자유의 날개>의 경우도 어쨌든 등장하는 모든 테란의 유닛들이 소개가 되었고. 프로토스도 나왔었는데, 설정 탓이겠지만 저그는 캠페인에서 완전히 방기되서 좀 문제가 있었긴 했다. 뭐 이건 종족당 캠페인이니까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었다.

 종족당 캠페인을 선택한 순간부터 게임의 자세하고 세밀한 소개 기능은 배척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그 저그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것은 심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캠페인의 저그는 애벌레 펌핑조차 하지 않는다. 저그를 플레이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컨트롤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군단의 심장>의 캠페인에서 유닛 설명을 가장 충실히 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캠페인 전용 유닛들을 설명하는 진화 미션이다.

 캠페인이 멀티의 튜토리얼에 국한되서는 안 될 것이고 <자유의 날개>가 찬사를 받은 것도 그 부분에 있지만, 그럼에도 캠페인은 신작의 여러 요소들을 최소한 소개는 시켜줘야 한다고 본다. 난 <군단의 심장>의 캠페인을 클리어했다. 하지만 <군단의 심장>에서 어떤 유닛이 추가되었고 어떤 업그레이드가 생겼는지는 전혀 모른다. 이건 약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캠페인의 저그 플레이는 밀리의 저그 플레이와는 전혀 다르다. <자유의 날개>의 캠페인이 어쨌든 테란의 이런 저런 요소들을 다 써볼 수 있게 했던 것과는 너무도 대비된다. 테란이나 프로토스 캠페인도 몇 개 넣어주고 확장팩의 요소들을 설명하는 정도로만 해 줬어도 좋았을 텐데. 그럴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RTS는 아마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장르일 것이다. 이 장르는 단순히 일꾼을 생산해 유닛을 모아 공격하는 것 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1:1이 중심이기에 타인의 도움을 받아 가며 게임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다. 유저에게 손놀림과 두뇌 회전을 동시에 요구하는, 익히기도 어렵고 단계를 올라서기는 더욱 어려운 매니악한 장르이다. 이런 장르가 용케도 한때는 대세가 되었구나. 블리자드가 <군단의 심장>에서 플레이하는 유저를 늘리려는 건지, 아니면 관객층을 늘리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쪽이든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보다 세심함이 필요할 텐데, <군단의 심장>은 꽤 불친절한 게임이었다.

 스타2의 게임플레이는 평이 갈렸지만 캠페인은 일관되게 호평이었다. <군단의 심장>에서도 가장 기대받던 것이 바로 캠페인이었다. 그렇다면 캠페인에 관심이 있는 유저들을 멀티로 끌어올 노력을 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스토리로 돌아가면 멩스크와 듀란을 죽인건 굉장한 진보이긴 한데 뭔가 번갯불에 콩 구워먹었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타임어택을 요구해서 그런가. <자유의 날개>에서 밝혀진게 워낙 대단해서 그런지 뭔가 새로이 밝혀진 사실도 거의 없다는 느낌이고. 원시 저그는 갑톡튀한게 맘에 안든다. 이보시오 블리자드 양반, 이게 최선이었소? 여기서도 설정을 바꿔버리다니.

 그리고 케리건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도 썩 맘에 들진 않는다. 전형의 전형의 전형으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 발레리안은 생각 외로 착실한 청년이더라. 뒷설정으로도 괜찮은 인물로 그려진다는데, 하지만 조심해야 할 지니, 블리자드는 언제나 가장 선한 인물을 타락시키곤 했다. 레이너 특공대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거의 얼굴도 못 내민건 아쉬웠다. 그리고 거의 언급도 없는 프로토스...... 대체 뭘 하고 있는겐가.

 20+7분량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진화미션을 하나의 미션으로 취급하기 부족한 이상, 전작보다 7개나 되는 미션이 잘린 것이다.

 전체적으로 재미는 있었는데.. 글쎄, 뭔가 방향적인 측면에서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의 날개> 클리어했을 때는 그냥 쩐다쩔어 했는데 아무래도 그에 못 미쳤다는 인상. 이제 또 공허의 유산을 기다려야겠네.


2013. 3. 25. 조금 추가